『독일이데올로기』를 다시 읽으면서 주목하게 되는 구절이 있었다.
“지배 계급을 구성하는 개인들은 ... 사유하는 자들로서 사상들의 생산자들로서 지배하며, 그들 시대의 사상들의 생산과 분배를 규제한다는 것; 따라서 그들의 사상들이 그 시대의 지배적 사상들이라는 것이다.” (강조는 인용자)
너무 상식적이 되어 버렸고 서구에서 유행한 이데올로기 연구가 한국 진보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많이 받아들여진 상황에서도 사상들의 생산과 분배 과정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유독 볼 수 없다. 내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거의 10년 쯤 전에 하이데거의 나치전력과 하이데거 사상의 나치즘과의 관련성을 다룬 책들을 보게 되었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문제를 둘러싼 유럽과 북미의 대가들이 망라된 거센 논쟁도 있었다. 학문적 영역에서의 논쟁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적 견해차이가 깔려 있었다. 그때 철학을 철학적 논리로만 보지 않고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맥락에서 접근하는 접근법이 서구에서는 꽤 널리 수용되어 연구 성과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놀랐다. 한국 사회에서는 술자리의 뒷담화 정도로만 오고 가는 얘기들이 중요한 학문적 연구와 치열한 탐사취재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그 책들 가운데에서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책 하나가 한나 아렌트와 하이데거의 관계를 추적하면서 하이데거 사상이 북미에서 유행하게 된 과정의 일단을 보여준 전기물이었다. 그리고 한나 아렌트가 냉전 시기에 명성을 얻게 된 과정도 조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 연구자들이 한나 아렌트와 하이데거와의 관계(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이자 연인이었으며 하이데거 사상이 미국에 수입되는 과정에서 한나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사실상의 대리인이었다.) 그리고 냉전과 미국 패권의 확장기에 한나 아렌트가 수행한 역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듣지 못했다. 나는 불편한 궁금증이 들었다. 왜 정치 이론을 그 이론의 생산자가 처해 있었던 정치적 상황에서 보려는 시도가 드문 것일까?
작년에서야 내 궁금증에 답을 줄 수 있는 책 하나를 찾게 되었다. The Cultural Cold War: The CIA and the World of Arts and Letters 라는 이 책은 2차 대전 이후 미국 정부와 자본가 집단이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고 자본주의와 특히 미국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학계와 문화 예술계를 어떻게 조종했는가를 상세히 밝히고 있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많은 학자, 예술가들이 알게 모르게 미국 정보기관의 협력자였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지배계급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의식적이고 치밀하게 그리고 거의 전방위적으로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려 애쓰고 있고 많은 경우에 성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지식을 얻기 위해 의존하는 모든 제도들 즉 대학들과 대중매체들 가운데에서 국가와 자본이 만들고 그 과정을 통제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그 제도를 채우는 내용들을 대중들 스스로가 결정하고 만들고 유통시키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되는가? 그 제도들에 의존해서 만들어지고 대중들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질적 수단을 거쳐야만 하는 지식이 스스로 중립적인 내용을 가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너무 비상식적인 생각 아닐까? 미국과 자본이 유럽을 대상으로 했던 대규모의 지식지배 작업을 다른 곳에서는 하지 않았을까? 이런 저런 의문들이 뒤를 이었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길었다. 그러나 내가 위에 인용한 독일이데올로기의 그 구절에 눈이 간 이유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맑스는 지배계급의 사상이 사회의 지배적 사상일 수 있는 중요한 이유를 지배계급이 사상의 생산과 분배 과정을 지배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지배계급이 가진 사상, 그리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사상이 더 큰 힘을 가지고 유포된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지배계급의 사상에 논리의 차원이나 학문적 논쟁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그것이 현실 속에서 생산되고 분배되는 과정을 밝히는 방식으로 대응하려는 노력은 거의 볼 수 없다. 그 지배의 메커니즘을 밝히고 공격하며 대안적인 사상의 생산과 분배 구조를 만드는 것이 지배 체제와 맞서는 중요한 전략의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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